그것은 차트 용지 위에 그려진 작은 구불구불한 선으로, 무심코 지나치기 쉬웠다. 하지만 1967년 한여름에 이를 발견한 24세의 박사 과정 학생은 그것이 그곳에 있을 리 없다는 사실을 즉각 알아차렸다. 조슬린 벨 버넬(Jocelyn Bell Burnell)은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새로운 전파 망원경에서 매일 밤 수백 미터에 달하는 데이터를 수작업으로 분석하고 있었다. 4에이커 규모의 부지에 나무 기둥과 전선으로 이루어진 이 관측 장비는 원래 먼 전파원에서 나오는 깜빡임 현상을 연구하기 위해 설계되었다. 그러나 그녀가 본 것은 기계적인 규칙성을 띠며 같은 하늘 영역에서 도착하는 일련의 펄스였다.
그녀의 지도교수인 앤서니 휴이시(Antony Hewish)는 그것을 인근 송신기에서 발생하는 간섭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벨 버넬은 납득하지 못했다. 그녀는 계속해서 차트를 샅샅이 뒤졌고, 1.337초마다 변함없이 반복되는 펄스 신호를 다시 찾아냈다. 그녀가 휴이시에게 증거를 제시했을 때, 연구팀의 첫 반응은 의구심이었다. 그들은 농담 삼아 그 신호원을 '외계인(Little Green Men)'을 뜻하는 'LGM-1'이라고 불렀다. 이름은 농담이었지만, 데이터는 매우 진지한 것이었다.
24세 박사 과정 학생은 어떻게 펄서가 된 신호를 발견했나
벨 버넬의 발견은 단 한 번의 '유레카' 순간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매일 약 30미터의 종이를 쏟아내는 행성 간 섬광 배열(Interplanetary Scintillation Array) 망원경의 출력물을 몇 주 동안이나 꼼꼼히 살폈다. 이 배열은 들판에 펼쳐진 1,000개 이상의 다이폴 안테나로 구성되었으며, 태양풍이 우주 전파원을 통과할 때 발생하는 전파 밝기 변화를 기록했다. 망원경의 결과물은 전적으로 아날로그 방식이었기에, 이상 징후를 알려줄 디지털 컴퓨터가 없었다. 따라서 신호를 찾아낸다는 것은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지를 구별하는 눈을 길러야 함을 의미했다.
그해 여름, 벨 버넬은 종이 약 0.5cm 정도를 차지하며 무작위적인 것으로 보이지 않는 희미한 표시를 발견했다. 그것이 진짜임을 확신하기까지는 반복적인 관측이 필요했다. 그 펄스는 별이라고 하기엔 너무 빨랐고, 행성이라고 하기엔 너무 안정적이었으며, 고정된 천체 좌표에서 나왔다. 휴이시와 연구팀이 지상의 간섭과 궤도 위성 가능성을 배제했을 때, 유일하게 남은 설명인 '외계 문명의 인공 신호'는 흥미로우면서도 터무니없게 느껴졌다.
몇 주 지나지 않아 벨 버넬은 하늘의 다른 영역에서 세 개의 펄스 신호원을 더 발견했다. 외계 문명 가설은 무너졌다. 은하계 반대편에 있는 여러 문명이 모두 같은 전파 파장에서 놀라운 일관성으로 신호를 보내고 있다면, 그들은 공모하고 있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그들이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천체를 우연히 발견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새로운 유형의 별 탄생
물리학자들은 곧 이 신호가 중성자별에서 온다는 것을 밝혀냈다. 중성자별은 초신성 폭발로 외층을 날려 보낸 거대 별의 붕괴된 핵이다. 지름이 겨우 20km에 불과한 이 물체들은 태양보다 더 많은 질량을 구체 안에 압축해 놓았는데, 그 밀도가 너무 높아 티스푼 하나 분량의 무게가 수십억 톤에 달한다. 별이 회전함에 따라 지구 자기장의 수조 배에 달하는 강력한 자기장이 하전 입자를 좁은 방사선 빔으로 쏘아 올려 우주를 가로질러 휩쓴다. 그 빔 중 하나가 지구를 향하면 우리는 등대의 불빛처럼 깜빡이는 펄스를 보게 된다.
펄서의 발견은 중성자별이 단순히 이론적인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라 실재함을 증명했다. 이는 원자 밀도와 상상할 수 없는 중력 상태에서 물질의 거동을 연구하는 천체물리학의 새로운 분야를 열었다. 그 후 수십 년 동안 펄서는 일반 상대성 이론, 별의 진화, 심지어 시공간의 구조를 연구하는 실험실이 되었다. 일부 밀리초 펄서는 초당 수백 번씩 회전하면서도 원자시계에 필적하는 안정성을 보여, 중력파를 탐지하는 정밀한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과학계에 여전히 울려 퍼지는 노벨상 누락
1974년 노벨 물리학상은 전파 망원경 연구와 펄서 발견에 공헌한 휴이시와 그의 동료 마틴 라일(Martin Ryle)에게 수여되었다. 처음 신호를 발견했던 24세 박사 과정 학생 벨 버넬은 명단에 없었다. 이 결정은 과학적 공로에 대한 논쟁을 촉발시켰고, 지금까지도 가라앉지 않고 있다. 저명한 천문학자 프레드 호일(Fred Hoyle) 경은 벨 버넬의 결정적인 역할이 간과되었다고 주장하며 위원회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많은 과학사학자들은 휴이시가 장비를 설계하고 관측을 주도했지만, 이상 징후를 발견하고 집요하게 추적한 사람은 벨 버넬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이 누락은 과학계 내 성별과 인정에 대한 논의의 기준점이 되었다. 벨 버넬 본인은 당시 학생이었고 노벨상은 보통 선임 연구자에게 수여된다는 점을 언급하며 불공정함에 대해 지속적으로 담담한 태도를 보여왔다. 그녀는 수년 후 BBC와의 인터뷰에서 "매우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연구 학생들에게 노벨상이 수여된다면 오히려 노벨상의 가치를 떨어뜨릴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은 위대한 발견 속에서 주니어 연구자, 특히 여성의 노고가 어떻게 보이지 않게 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60년 전 24세 박사 과정 학생이 발견한 신호의 유산
거의 60년이 지난 지금도 벨 버넬의 '작은 구불구불한 흔적'은 최첨단 과학을 이끌고 있다. 천문학자들은 현재 3,000개가 넘는 펄서를 알고 있으며, 각각은 별의 종말이 남긴 빛나는 잔해이다. 연구자들은 이를 이용해 은하계를 지도화하고, 우주 거리를 측정하며, 물질의 궁극적인 운명에 대한 이론을 검증한다. 중력파에 대한 첫 간접 증거는 1974년 러셀 헐스(Russell Hulse)와 조셉 테일러(Joseph Taylor)가 발견한 쌍성 펄서 시스템에서 나왔으며, 이 발견은 노벨상을 수상하고 새로운 영역에서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을 확인시켜 주었다.
벨 버넬 자신의 경력도 꽃을 피웠다. 그녀는 주요 천문대를 이끌고 물리학계의 다양성을 옹호했으며, 2018년에는 300만 달러 규모의 근본 물리학 특별 돌파구상(Special Breakthrough Prize in Fundamental Physics)을 수상했다. 그녀는 이 상금 전액을 물리학을 공부하는 여성, 소수 민족, 난민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기부했으며, 이는 널리 존경을 받았다. 구불구불한 선을 응시하던 학생에서 천문학계의 존경받는 인물이 되기까지의 그녀의 이야기는 현대 과학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서사 중 하나로 남아 있다.
24세 박사 과정 학생이 비좁은 케임브리지 연구실에서 발견한 신호는 새로운 우주 종을 찾아내는 것 이상의 일을 해냈다. 그것은 우주가 가장 극한의 죽음을 맞이할 때조차 어둠을 가로질러 우리를 인도하는 놀라운 등대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증명했다.
출처
- Nature (1968년 펄서 발견 발표 논문)
- 조슬린 벨 버넬 관련 케임브리지 대학교 아카이브
- 브레이크스루상 재단 발표 (2018년)
- 벨 버넬과 진행한 BBC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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